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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일상

남자가 일생에 한번 해볼만 한 것 집짓기 #0

다른 사람들도 비슷 하겠지만 살면서 여러가지 사건들을 격으면서 이렇게 지금의 자리에 내가 있나보다. 다행히 빚은 많지 않다.

세월.... 그냥 무던히 흘러가면서 애들 자라는 거 보는거? 그런거 아닌가?

난 아직 세월을 이해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앞으로의 꿈은 람보르기니 우라칸을 타고 내 건물로 청소 하러 다니는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불가능하다고 꿈을 꾸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람보르기니나 다른 슈퍼카는 차보험료가 1년에 2,000만원 이라고 하는데 보험을 안들어봤으니 ..... 잘 모르겠고 ㅋㅋㅋ 건물임대료로람보르기니를 타기위해서는 보험료 2,000만원과 차량관리와 유지비1,000만원으로 잡아서 1년에 최소3,000만원이상이 나와야 저 꿈이 현실이 된다.

제 이야기를 좀 주저리 주저리  하자면... - 자랑이라면 자랑이겠네 ..

지방대 법학과 출신이 건축물융합IT일을 20년이상하고 있고

대기업 IT 계열사에서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도 했고(공항,L땡 그룹 초고층빌딩,놀이동산,복합몰)

대학4학년때는 IMF 시대의 나만의 타계책을 생각하다가 토목기사를 공부하기로 했었다. 토목기사 볼수있는 자격이 생겨서 후배한테 이거 공부해 보겠다고 했더니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불가능하다 였다.(근데 그때 땃ㅡ,.ㅡ)  -자격증이 많다고 해도 직업에서 사용하는건 1개 이다 -- -똑똑한 한개가 가장 좋은 것이라 하겠다..

 

30대중반에 중국어시작해서 신HSK6급을 땃으니 이것도 어쩌면 불가능한 일을 한것이 겠지

 

이글 읽으시는 분들 중에 무었인가를 계획하시는 분들~! 어렵다고 해도 그걸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로 그 사람들이 할 수있다면 나도 할수 있는 겁니다 ...

 

중국어에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나와 친분이 있었던 일본계 회사 사장님은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셨는데(한국인)제가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한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중국어 꿈을 꾸어야 한다. 꿈에서도 중국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 경지에 도달하면 외국어를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말을 듣고 한 두번 정도 중국어로 중국인과 회의하는 꿈을 꾸었었다.

 

중국어를 좀 하게 되었고 중국심양에 있을때 복합단지 주차장관계로 네델란드계 주차장시스템 업체가 중국인 통역을 데리고 와서 영업을 위한 영업미팅을 했었었다.

 회의를 하는데 내 동료는 중국어를 하지 못했고 영어도 그 닥~~~

네델란드 주재원은 통역에게 영어로 이야기 했고 중국인통역은 나에게 중국어로 이야기를 했었다. 난 다시 내 동료에게 한국말로 이야기 해주었다. 그때 난 중국어를 이야기 할때 한국말로 번역해서 머리속으로 이해하지 않았었고 그냥 중국어로 이해했기에 한국어로 통역해줄 때는 뇌가 두개로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3개국어가 혼재한 회의는 일생에 한번은 해봐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 회의는 잘 되지 않았었다.네델란드 주재원이 통역에게 중국현지와 맞지않는 조건을 이야기 해주면 중국어로 다르게 통역을 해서 내가 다시 물어보게 되었고 상대편통역은 내가 영어도 알아 듣는다는것을 알아쳈었다..

(영어회화는 않된다. 어느순간부터 영어로 알아들어서 대답을 하고자 영어로 이야기 한다고 입밖으로 내 뱉으면 중국어가 나와 버린다.처음 경험했을때 정말 나도 놀랬었다)회의가 잘 되었겠나?

 다른 에피소드는 한국에서 복합몰을 오픈하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복합몰안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시스템 점검하러 나갔다가 가족을 길을 찾아준적도 있고 당황하는 아주머니를 관광버스가 주차되어있는 주차장까지 데려다 준적도 있었다.

 一路平安~~~~ 이런 인사도 해주었고

중국에서살다가경력직으로 입사를 했으니(천진에서 3년,입사하고심양,청두에서3년)

 

사진설명-산해관 천하제일문

  중국으로 다시 가게 되었다. 중국에 있는 동안 심양에서 청두까지 나의 상관과 임원이 나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중국 협력사와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겠지..) 이 놈들이 어떻게 나를 씹어댔떤지 본사 동료에게 난 어느순간 무능한 동료이었고 파렴치하게 협력사에게 입찰을 진행하는 PM으로 인식이 되어가고 있었다...거기에 부당한 갑질도 더해서 (부적절한 관계의 협력사가 조건이 되지않아서 내가 입찰에서 배제시켰 었다)모함이 극에 달아서 고객사 앞에서 노골적으로 직장인에게는 너무도 치욕적인 이야기를 했고 그때 난 알았다..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갈것을 인지하고 모든것을 녹취했다... 이 시절 나의 병명이- 직장생활에서 허위사실유포로 인한 적응장애.... 직장 왕따로 인한 적응장애.... 

최고조의 시기에 여행을 많이 다녔었다.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근무하다 계림성 양숴라는 곳으로 여행을 갔드랬다. (양숴에 중국20위안짜리 지폐뒷면 배경이 있다)여행을 통한 내 문제의 대답은 

'회사는 못다니겠구나~! 그러나 억울한 건 벗자'

 

그러기 위해서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입증책임이 나에게 있었다...

 

사진설명-청두 진리

 

사진설명 - 계림 양숴 올드타운

 

 

한국으로 돌아와서 닥터의 처방으로 알프로졸람을 복용했다. 약을 먹으면 편안해졌지만 낮에도 너무 졸렸다.걱정하는 분들은 나의 안부를 물어봤었다 내 대답은

 

'약먹으면 괜찮아요'

'약먹는게 괜찮은거냐?' 라는 되물음에 얼마간 대답을 못했었다.

 

직장내 왕따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고 10개월에 거쳐서 소송에서 이겼다. 8개월동안 회사에서 일을 배정해 주지 않아서 임원이 나를 잘 관찰할 수 있는 자리를 나에게 배정해 줬다. 소송초기에 참 어이없는 이야기를 임원에게서 들었다.

임원면담에서 '소송을 취하해라~다 너를 위해서 이야기하는 거다.' 저 살라고 하는 이야기 임을 바로 알았다...임원비서자리 옆에서 벽만 보면서 그 10개월중 8개월을 버텼고 결과적으로 악의 무리는 30여명이 넘는 팀원들내에서 공개사과를 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 악의 무리는 회사 다니더라. 적응장애는 직장에서 산업재해까지 인정받았다. 정이 떨어져서 회사를 그만 뒀다.

 난 한번 넘어진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일어나면 그뿐~~~~'

부장은 그해 회사를 떠났고 담당임원인 상무는 이일로 한직에서 남은기간 생활하다 정기 임원발령때 집으로 갔다.매니저는 보직해임 되었다.

 

짦게 이야기 했지만 내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었나 보다...(일반적으로 겪는 일말고--생노병사 외)

 

 -웃기는 일은 최근에 저 악의 무리중 막내가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지방에 내려오니 내 생각이 났다고... 그 노므시키는 자기 좀 편하자고 나에게서 '난 잊였으니 그냥 넌 편하게 있으라' 이런 영화나 드라마 대사를 듣기 원한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뭐라 이야기 했냐면?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냈다.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난 생각하기도 싫어서 그 노므시키 전화번호도 지웠었다.

 

 혹시 이글을 읽는 분중에 직장내 왕따로 마음고생하시는 분은 저에게 연락하셔도 좋다. 말이라도 들어 드릴 수 있다. 위 말이 거짓이 아니니 연락처 공개 한다.   frame0@hanmail.net  댓글로 이야기 하시면 연락가능하다.. 메일도 가능..메일은 매일본다.

 

취미가 사진이라 카메라는 항상 내 옆에 있었다. 여행을 갈때면 항상 옆에 DSLR이 있었다. 블러그 하는 목적중에 하나가 여행사진 남기는 것이다 ㅎㅎ

 -난 Canon 유저다. 집사람도 카메라 동호회에서 만났다.

집사람은 내 랜즈를 쓰기위해 자연스럽게 같이 Canon 유저가 되었다.-

 

내 신변정리가 되어가고 지방 연고지로 내려와서 알고 지낸지 오래된 사람들과 다시일을 하게 되었다...그러던 차에 나의 인생이 험난해 지기 시작하려 했다.

 

집사람이 일을 확장할려고 시내 번화가와 많이 떨어져있지 않은 곳에 대지를 구입했다. 자기 공방(Studio)을 짓겠다고.......난 집사람이 일시작할때 그냥 +- '0'라도 그냥 재미삼아서 일을 하라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이 커졌다...

 

내가 표정관리를 잘해야 한다 난 가장이다....(자금이 넉넉하지 않아서 걱정이었다)

집사람과 같이 일을 하던 처남내랑 같이 힘을 합치기로 했다... 원래부터 합칠 생각으로 진행을 했는데 내가 나중에 알았다 ㅡ,.ㅡ

 대지80평에 밭이 20평..

총333m2 100평인데 건폐율이 60%가 됐다... 용적율 190%

집짓기를 해야 하는건가?

 

건폐율- 대지에 건물을 대지대비 얼마를 건물바닥면적으로 쓸 비율

용적율- 주차장과 공용구역을 제외하고 건물1층면적을 위로 올릴 수 있는 비율

 

집사람의 월 공방임대료가 부대비용을 합쳐서 80만원이상이 나갔었다...

이 80만원을 금융비용인 이자비용으로 활용하면 얼마나 은행에서 빌릴 수있을까? 라는 단순한 생각과 우리 아파트와 처남내 아파트를 합치면 아주 못 할 것도 아닌것 같게 느껴졌다..  할 수 있다... ㅋㅋ

 

남자가 일생에 한번 쯤 집을 지어 봐야 하지 않겠나?

 

 돌아가신 아버지도 집을 한번 지었었고(어머니 말로는 시골에서 한번만 지은것 같지는 않았다)장인어른도 집을 지어보셨다.

경사지 였다. 공방과 까페만 할려고 했는데 원룸과 투룸을 더하고 처남내와 우리집이 같이 건물에 들어가기로 했다.대학때부터 들었던 생각

 

'남들 할 수있는건 나도 할 수 있다.'

이 다음 포스팅부터는 집짓기를 처음 설계부터 준공까지 다뤄 보겠다.

 

내 글을  검색으로 우연히 들어오신 분들중에 집짓기나 카페오픈을 염두하고 계신분이 있다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